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20 사건 (문단 편집) === 우한 점령 === 상하이에 도착한 마오쩌둥은 상하이에서 가장 좋은 호텔인 훙차오빈관에 투숙하며 간부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마오쩌둥은 천짜이다오가 반역을 꾀한 건지에 대해 크게 우려했으나 양청우는 그럴리가 없다고 했고 마오쩌둥도 만약에 천짜이다오나 중한화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면 우한을 떠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긍했다. 7월 22일 마오쩌둥은 백만웅사와 우한 주둔군을 해산할 것을 지시한 후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저우언라이를 통해 천짜이다오와 중한화를 베이징으로 소환할 것을 지시했다. 천짜이다오와 중한화는 마오쩌둥에 반기를 들 생각이 없었으므로 즉각 왕리를 석방하고 베이징으로 출두했다. 하지만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즉각 무장한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경서빈관에 수감되었다. 이들은 공군사령관 오법헌의 주도 하에 여섯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오법헌은 천짜이다오의 뺨을 후려치며 그를 마구 몰아세웠다. 7월 25일, 군대 내부 주자파를 반대한다는 군중 집회가 장칭의 주도 하에 베이징에서 열렸고 천짜이다오와 중한화는 저우언라이가 소집한 정치국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 끌려가 비판을 받았다. 7월 27일, 천짜이다오와 중한화는 모든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7월 27일, [[린뱌오]]가 파견한 해군과 공수부대가 우한 군구를 무장해제시켜 장병들을 체포하여 노동 개조 수용소로 보내고 백만웅사를 해체했다. 조반파 홍위병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우한이 국공내전 이후 두번째로 해방되었다고 자축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왕리, 셰푸즈는 영웅대접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